학생-교사 연동형 초등 영단어 학습 앱
| 프로젝트 관리 및 소통 | Discord, Notion(Kanban) |
|---|---|
| 프론트엔드 | React Native (JavaScript) |
| 백엔드 | Spring (Java) |
| 디자인 및 프로토타이핑 | Figma |
부트캠프에서 기획자들끼리만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진짜 작동하는 프로덕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갈증이 찾아온다. 천재교육 에듀테크 PM 양성 과정을 함께 수강하던 동기와 의기투합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초등학생을 위한 영단어 앱으로 좁혀졌다. 천재교육 부트캠프 소속이니 교과서 영단어 데이터 같은 교육 쪽 리소스를 활용하기 좋을 거라 판단했다. 마침 함께한 기획자가 교대 출신이라 초등 교육 현장 조사나 현직 교사 인터뷰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여기에 운 좋게도 사내 개발자 부트캠프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내던 풀스택 개발자 두 분이 합류하게 되면서, 기획자 둘의 가벼운 작당 모의는 꽤 그럴듯한 프로젝트로 닻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열정이 넘치는 만큼, 회의를 거듭할수록 아이디어는 무한정 뻗어나갔다. AI 튜터, TTS, 복잡한 게이미피케이션 등 화려한 기획들이 쏟아졌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두 달 남짓이었다.
누군가는 붕 떠 있는 아이디어들을 제한된 시간 안에 개발 가능한 MVP 형태로 무자비하게 깎아내야 했다. 게다가 프로젝트가 중후반에 접어들며 취업 준비 등 각자의 현실적인 이슈로 팀원들의 동력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텐션을 마지막까지 꽉 붙잡으려 노력했다. 그야말로 산으로 가는 기획을 수렴하고, 프로젝트를 온전히 끝마치기 위한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
타겟 유저인 초등학생에게 영어 단어 학습은 그저 지루한 숙제다. 교육부 지침상 3학년부터 영어가 정규 교과로 편성되지만, 강제성이 부여되는 순간 아이들의 흥미는 수직 하락한다.
우리는 기획 초기 단계에서 앱의 실사용자를 학습을 하는 학생과 학급을 관리하는 교사 양방향으로 두고 시장 조사를 진행했고, 기존 서비스들이 놓치고 있는 명확한 빈틈 두 가지를 발견했다.
글로벌하게 검증된, 효율적인 반복 학습을 제공하는 훌륭한 서비스지만 UI/UX가 다소 딱딱하고 건조하다. 자발적인 성인 학습자에게는 유용할지 몰라도, 초등학생이 스스로 학습 동기를 느끼고 몰입하기엔 시각적인 피드백이나 게이미피케이션 요소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 현장에 맞춰 잘 만들어진 서비스들이지만, 철저히 교사 중심의 학급 관리에만 방점이 찍혀 있었다. 기능이 방대한 만큼 사용하기 무거웠고, 정작 학습의 주체인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낼 만한 유기적인 연결고리는 결여되어 있었다.
시장에 영단어 앱은 차고 넘쳤지만, 놀랍게도 이 두 가지 니즈를 가볍게 충족하는 서비스는 없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학생은 직관적인 터치로 즉각적인 성취감을 느끼고, 교사는 최소한의 리소스로 학급 진도를 관리할 수 있는 가볍고 유쾌한 단어장을 만들자!
학생의 흥미 유발과 교사의 편의성을 모두 잡아야 했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발산된 아이디어 속에서 기획의 틀을 잡기 위해, 기능 정의서를 전면 수정하며 무자비한 스펙 다이어트를 주도했다. 그렇게 남긴 우리의 핵심 MVP 솔루션은 아래와 같다.
초반에는 ‘알 깨기 게임’이나 ‘AI 음성 발음 평가’ 같은 무거운 기능들이 논의되었다. 하지만 개발 리소스 대비 효용을 고려해 과감히 컷하고, 직관적인 터치 인터랙션으로 선회했다. 단순히 단어를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화면을 연속으로 터치하면 단어가 외워지면서 배경 일러스트가 드러나도록 기획했다. 큰 리소스를 들이지 않고도 초등학생들에게 즉각적인 시각적 보상과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최적의 타협점이었다.
당초 계획은 거대한 영단어 DB를 구축해 교사들이 검색해서 쓰게 하자는 쪽이었다. 하지만 현직 교사들은 이미 교과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단어 자료나 이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엑셀 리스트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에 착안해, 서버에서 억지로 무거운 데이터를 쌓지 않고 교사가 보유한 단어 데이터를 CSV 형태로 한 번에 업로드할 수 있는 대시보드 기능을 기획했다. 이 과정을 사용자 로컬에서 처리하도록 정책을 설계해, 백엔드 개발자의 서버 부담을 대폭 줄이면서도 교사의 사용 편의성은 극대화했다.
복잡한 회원가입 절차는 초등학생 유저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이를 없애기 위해 랜덤 영어+숫자 조합 8자리 형태의 클래스 코드만 입력하면 바로 학급과 연동되도록 사용자 흐름을 단순화했다.
또한 앱 내에서 포인트를 모아 아이템을 사는 등의 리워드 시스템 대신, 교사가 대시보드에서 “이번 단원 다 외우면 칭찬 도장 5개!”처럼 서술형 공지를 띄울 수 있는 기능을 제안했다. 개발 리소스는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오프라인의 교실의 역동적인 특성을 그대로 앱에 녹여낸 기획이었다.
처음 팀이 꾸려졌을 때만 해도 나의 포지션은 서브 기획 겸 디자인 지원 정도였다. 하지만 실무 프로세스로 진입하며 기획과 개발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흩어지는 팀의 동력을 모으고 방향을 설정해야 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메인 PM이자 유일한 디자이너로서 이 상황들을 타개해 나가고 있었다.
앞서 주요 스펙을 정리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래서 이걸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초기 회의는 “이런 거 하면 좋지 않을까요?” 식의 추상적인 텍스트만 오갔고, 당장 코드를 짜야 하는 개발자들과의 소통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래서 흩어진 아이디어들을 모아 직접 구체적인 화면 플로우 차트와 와이어프레임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떤 화면으로 넘어가고, 어떤 피드백이 나오는지 눈에 보이는 시각적 가이드를 제공하자, 비로소 개발자들과 현실적인 구현 방안을 논의할수 있었다. 허공을 떠도는 아이디어들을 실제 프로덕트의 형태로 구현하며 자연스럽게 프로젝트의 방향키를 쥐게 된 것이다.
디자인을 전담하면서 겪은 가장 뼈아픈 깨달음이다. 피그마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기에,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지만 픽셀 단위의 현실 앞에서 내가 한 디자인은 그저 도형 쌓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예쁘지도 않고 엉성하기만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디자인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머티리얼 디자인 가이드를 파고들었다. 여백의 규칙, 폰트의 위계, 컴포넌트 간격 등을 세밀하게 수치화하여 나만의 미니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를 바탕으로 화면을 만들자 비로소 실제 앱 같은 그럴싸한 화면이 나왔다.
비록 내 디자인이 완벽하게 코드로 구현된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은 내게 엄청나 자산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훗날 실무에서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느낌적인 느낌이 아닌, 명확한 수치와 컴포넌트 단위의 디자이너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스케줄로 인해 주로 비대면으로 진행하다 보니, 각자 맡은 작업을 파편화된 상태로 진행하며 기획-개발의 싱크가 어긋나거나 병목이 생기는 순간들이 빈번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션 칸반 보드를 도입했다. 파트별 개발 우선순위를 세팅하고, 남은 태스크들을 하나의 보드에 시각화했다. 기획서처럼 정해진 문서에 갇히지 않고, 그때그때 구현 가능한 최선의 타협점을 찾아가며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고 굴러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자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내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1월 말, 목표했던 MVP 수준의 개발을 완료하고 모바일 화면 검증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비록 팀원들의 취업 등 각자의 현실적인 이슈로 인해 대규모 배포나 지속적인 고도화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진짜 돌아가는 프로덕트로 구현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나를 기획자로서 한 단계 크게 도약시켰다. 가장 큰 수확은 디자이너의 언어를 이해하는 기획자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픽셀 단위로 화면을 쪼개며 컴포넌트를 설계해 본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메리트가 되었다. 실제로 입사 후 디자이너 동료분들께 함께 일하기 정말 편한 기획자라는, 내 커리어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하나하나 부딪치며 직접 겪어본 디자인의 무게감은 앞으로의 협업에서도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난 디자이너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하나를 온전히 이끌고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출발했어?!” 프로젝트 이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단순히 문서를 잘 쓰는 걸 넘어 팀의 텐션을 유지하고, 기술적 한계와 타협하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수습하는 과정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단어쓱싹’은 빈 화면의 막막함부터 개발자와의 밀당까지, 기획자가 감당해야 할 프로덕트 생애주기의 거의 모든 것을 몸소 부딪치며 배운 값진 오답노트이자 훈장이다. 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경험을 자양분 삼아,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단단한 기획자로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