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야 할 건 프로젝트만이 아니었음을…
포트폴리오를 세 번 갈아엎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도 아니고, 프로젝트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프로젝트는 충분하다 생각했고, 성과도 나름 잘 정리했다고 믿었다. 그런데도 계속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내 포트폴리오에는 ‘나’가 없었다.
요즘 서비스기획자/PM에게 포트폴리오는 취업이든 이직이든 거의 필수처럼 여겨진다. 직무 전환을 준비하며 가장 당황했던 부분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력서 하나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프로젝트를 다시 정리하고 디자인까지 신경써야 하는 포트폴리오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포트폴리오의 기준도 단순했다.
여러 레퍼런스를 찾아보며 최대한 깔끔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디자이너 수준은 아니더라도 거슬리지 않는 디자인을 만들고, 프로젝트의 성과를 보기 좋게 정리했다. 그게 좋은 포트폴리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면 수정할수록 의문이 커졌다.
기업은 정말 이런 걸 보고 싶어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걸까?
운이 좋게도 포트폴리오를 정말 꼼꼼하게 읽어주시는 면접관분들을 자주 만났다. 그리고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았다.
“왜 그렇게 판단하셨나요?”
“검토한 다른 대안이 있나요?”
“이 문제를 처음부터 문제라고 정의한 이유가 뭔가요?”
포트폴리오에는 적혀 있지 않는 내용이었다. 나는 프로젝트 결과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고, 면접관은 그 결과를 만들어 낸 사고 과정을 궁금해 했다.
이때부터 다양한 기업의 JD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가설 수립, 문제 정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논리적인 사고 과정. 기업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원하는 역량은 비슷했다. 프로젝트를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사람인지.
하지만 내 포트폴리오는 반대였다. 짧은 경력을 보완하고 싶었던 나는 프로젝트의 중요성, 성과의 크기, 내가 얼마나 좋은 판단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강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 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협업 같은 키워드를 잔뜩 적어놓았지만, 사실 이런 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획자의 기본 소양과도 같다. 내 포트폴리오는 프로젝트를 소개할 뿐, 정작 나라는 사람은 잘 소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갈아엎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디자인을 바꾸고, 이전 회사 색깔이 강하게 묻어 있던 요소들을 덜어냈다. 두 번째는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다시 찾았다. 내 경험을 전부 정리하고, AI의 도움도 받아가며 다른 사람이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그것도 부족했다. 결국 세 번째에는 프로젝트 자체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 사고 과정을 복기했다. 이 문제를 왜 문제라고 정의했는지, 처음 떠올린 해결책은 무엇인지, 다른 대안은 왜 버렸는지,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처음에는 이 모든 내용을 4페이지 안에 압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마다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프로젝트는 문제 정의 과정이 핵심이었고, 어떤 프로젝트는 해결책보다 분석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다시 모든 경험을 하나씩 분해했다.
그렇게 고칠수록 불필요한 내용이 빠지고 사고 과정만 남기 시작했다.
어쩌면 포트폴리오는 하나의 프로덕트이기도 하다. 사용자(면접관)가 가장 궁금해 할 정보를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전달할지 설계하는 작업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트폴리오는 프로젝트 자랑용이 아닌, ‘나는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용도여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수정하면서 프로젝트 당시의 나를 계속 되돌아보게 되었다. 입사 초에는 별다른 대안 검토 없이 직관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는 가능한 모든 대안을 비교하고,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며칠씩 고민하기도 했다. 포트폴리오뿐만 아니라 나의 성장 과정을 다시 정리했던 셈이다. 이렇게 정리하는 것 또한 또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경력이 짧은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아무리 좋은 성과가 적혀 있어도 정말 본인이 주도해서 만든 결과인지 쉽게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이전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의미 있는 성과도 만들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내가 어떤 판단을 했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증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과를 더 화려하게 꾸미는 대신, 성과에 도달하기까지의 판단 과정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 과정이 때로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부족함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사고하고, 성장하고, 무엇을 부완하려 하는지가 더 잘 드러난다고 믿는다.
기업은 지원자의 포트폴리오를 읽고 ‘앞으로도 이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구나’ 라는 판단을 내린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한 사람의 사고 방식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반복된다. 결국 기업이 채용하는 것은 프로젝트가 아닌,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