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뜨개인, 새로운 취미에서 PM의 시선을 발견하다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첫 커리어였던 직장을 퇴사하고 나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건 바로 뜨개질. 한창 겨울이 다가오는 12월이기도 했고, 마침 요즘 뜨개질 붐이 불고 있어 예전에 비해 어디에서나 쉽게 뜨개질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보통 나의 취미는 정적인 것에 국한되는데, 뜨개질 하면 떠오르는 '흔들의자에서 손자들에게 줄 니트를 뜨는 할머니'의 이미지가 내 추구미와 일치했다. 거기다가 무엇이든 성과를 추구하는 성향상, 내가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만큼 행복한 취미는 없었다. 뜨개질을 시작하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니트를 만드는 것도, 흔들의자에서 편안하게 뜨개질을 하는 것도 초고수들만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단언컨대 뜨개질은 결코 정적인 취미가 아니다. 정적인 취미라 한다면 그중에서도 가장 동적인, 일종의 스포츠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실을 뜨면 뜰수록,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코 수와 단 수를 세고, 몇 번이나 뜨고 푸르고, 실을 이어나가며 마무리까지 도달하는 이 과정이, 그동안 내가 직장에서 해왔던 프로덕트 제작과 너무 닮아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뜬 것은 목도리였다. 평소에 자주 하고 다니는 겨울 아이템이자, 무엇보다도 겉뜨기/안뜨기만 배우면 쉽게 뜰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 하지만 목도리를 뜨기 위해서는 뜨개질 기초부터 배워야 했기에, 새 취미를 갖게 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배우고, 뜨고, 풀고 이 세 가지 과정을 반복하며 전투 뜨개인의 자세를 갖췄다. 그야말로 실과의 사투였다. 그렇게 만들어낸 목도리는 나의 첫 뜨개질 MVP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목도리 또한 하나의 프로덕트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노고가 필요하다. 의사결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개발자가 커밋을 통해 잔디를 심는다면, 뜨개인은 단을 만든다. 1단, 2단 뜨다 보면 실은 순식간에 동나 있고, 목도리 또한 길어져 있다. 목도리를 모두 뜨는 데 총 7개의 실이 들었다. 실이 이렇게 많이 든 까닭은 양이 많지 않은 다이소 실을 썼기 때문이다. 실을 몽땅 써 버리기 전에 새 실을 묶어 이어나가야 하는데, 아무리 매듭을 잘 묶어도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모습이 얼핏 떠오른다. 최대한 티나지 않게 매듭을 안쪽에 숨기려면, 지금 뜨고 있는 편물의 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뜨개질을 하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제 해결이다. 예를 들면, 나는 분명 10코로 시작을 했는데 어느 순간 9코 또는 11코가 되어 있다. 이럴 땐 어느 단에서부터 잘못됐는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처음에는 뜨개질이 미숙한 탓에 전부 풀러가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했다. 다행히 이제는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해당 단의 코를 모두 풀고, 코바늘로 다시 엮어가는 식으로 손쉽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됐다. 아직도 잘 모르겠는 부분은 하나씩 풀어보며 되짚어 보기는 하나, 확실히 그 빈도가 줄었다. 낯선 상황이 익숙해지고,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말았다.
PM 업무를 할 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무슨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이며, 문제 해결 방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한 코 정도를 잘못 뜬 수준의 간단한 실수는 다음 단에서 코바늘을 이용해 올바르게 뀀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로도 해결 안되는 문제가 있다면… '푸르시오'만이 정답이다. 혹은 흐린 눈으로 넘어가는 고도의 전략도 있지만 성격상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중간 점검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건 역시 빠른 점검과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도리를 통해 프로덕트의 기초적인 구조와 프로세스를 파악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복잡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다. 지금 뜨고 있는 프로젝트 백은 겹단뜨기라는 장벽으로 인해 무려 세 번이나 푸르시오를 했다. 그 결과, 코수링을 적절하게 활용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뜨개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목도리는 너무 천천히 뜬 탓에 겨울 안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 백이야 말로 봄 안에 떠서 새 회사에 들고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이직 준비도, 뜨개질도 꾸준하게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