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면접 그리고 좋은 기획자가 되는 법까지
나는 심리테스트 광인이다. 결과지 하나로 내 성격을 나름대로 객관화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남이 보는 내 모습이 어떤지 늘 궁금해하고는 한다.
그런데 정작 기획자로서의 나를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주변에 몇몇 기획자나 개발자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연차이거나 서로 하는 일이 달라 깊이 있는 피드백을 주고받기는 어려웠다. 퇴사 후 이직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선배 기획자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일단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더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누군가에게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만 하고 실제로 움직인 적은 없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피드백을 받겠다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
그러던 중 얼마 전 다녀온 프롬디자이너 커뮤니티의 34번째 밋업에서 25년 차 서비스기획자 야메군 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내가 참여하고 있는 기획자 오픈채팅 등의 커뮤니티에서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시던 분이어서 마치 연예인✨을 보는 기분! 운좋게 2부 네트워킹 시간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고, 이런저런 고민을 말씀드리자 먼저 흔쾌히 커피챗을 제안해 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그리하여 오늘 글의 주제는 시니어 기획자와의 인생 최초 커피챗 후기,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알게 된 내가 보완해야 할 점들이다.
가장 먼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함께 봤다.
이전에 포트폴리오를 세 번이나 갈아엎었다고 말씀드렸는데, 돌아온 이야기는 의외였다. 채용 과정에서는 포트폴리오보다 이력서가 훨씬 중요하고, 포트폴리오는 생각보다 자세히 읽지 않으니 그렇게까지 갈아엎을 필요는 없다는 것…😂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동시에 수정하면서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던 부분이다. 아무리 포트폴리오를 예쁘고 자세하게 만들어도 그걸 열어보게 만드는 건 이력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여드린 이력서는 문제-해결-실행-결과를 한 줄씩 정리한 세미 경력기술서 형태의 8장짜리 풀버전이었다. 여기서 가장 크게 받은 피드백은 정량 성과 뒤에 ‘그래서?’가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CS 챗봇을 만들어 상담원 연결을 56% 감소시켰다면 상담 리소스가 얼마나 줄었는지, 운영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회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숫자로 성과를 증명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 다음 내용은 쓰지 않았다. 지표가 움직였다는 사실과 그 움직임이 실제 비즈니스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다른 문제다. 그동안 정량 성과를 적어야 한다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숫자 자체를 종착점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이력서만 보면 다소 수동적으로 보인다는 피드백이었다. 별도의 경력기술서 없이 이력서 안에 모든 내용을 넣다 보니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쓰려 했고, 그 과정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어떤 판단을 했는지, 어디까지 주도했는지가 많이 생략되었다. 분량을 줄이려고 삭제한 내용들이 주도성까지 함께 지워버린 셈이다. 결국 지금보다 더 경력기술서에 가깝게 풀어 쓰면서 부족한 맥락을 다시 채울 필요가 있었다. 마침 최근 다른 기업의 JD를 보면서 나 역시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터라, 미루지 않고 바로 손볼 예정이다.
이력서의 전체적인 첫인상은 ‘경력이 얕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CS 경력이 1년 3개월이라는 점도 그 인상에 영향을 줬다. 백오피스 운영을 충분히 파악했다는 강점으로 내세우기에는 적어도 5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뼈아프지만 이미 지나간 경력을 늘릴 방법은 없다. 재직 기간은 바꿀 수 없어도, 무엇을 얼마나 해봤는지는 더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 지금까지 해본 경험 자체는 동년차 대비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도 받았다.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짧은 경력을 숨기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쌓은 깊이를 이력서에서도 어떻게든 보이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직접 기획하고 구현해 본 경험 자체에 의미를 뒀다면, 채용에서는 그 다음 단계가 필요했다. 런칭 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까지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력서에 담긴 일부 사이드 프로젝트는 런칭까지 이어지지 못했거나 아직 개발 중인 상태였다. 앞으로는 프로젝트 개수를 늘리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실제로 배포하고 사용자를 만나 결과를 확인하는 경험을 더 쌓아보려고 한다.
가장 오래 이야기한 건 면접에 대한 내용이었다. 6월 이후 서류 합격률이 낮아져 고민이었는데, 채용시장에는 공고가 뜸해지는 시기가 있고 추석 이후 다시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 당장 서류 결과에만 매달리기보다 실제 면접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기로 했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뜯어봤다. 나는 그동안 모 취업 유튜브에서 본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말하고, 필살기 경험을 붙이고, 마지막에는 ‘이런 역량으로 회사에 기여하겠습니다’로 끝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기소개를 강점을 압축해서 설명하는 시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의 사업적 특징을 지원 동기와 연결할 수도 있고, 가벼운 위트로 첫 분위기를 풀 수도 있다. 예시를 듣자마자 왜 내 자기소개가 긴장감 가득하고 재미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자기소개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기존 문장을 조금씩 고치는 대신, 내 성향을 보여주는 버전과 회사에 맞춘 버전 등 목적부터 다른 세 가지 자기소개를 새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면접 단골 질문인 강점과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생각하는 강점 중 하나는 ‘이름을 잘 기억한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면접에서도 써볼 만한 답이었지만 문제는 단점이었다. 이름에 비해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면접에서 이야기할 단점 치고는 조금 애매하다. 그렇다고 흔히 나오는 ‘성격이 급해서 꼼꼼하지 못하지만 메모하는 습관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일에 너무 몰입해서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놓고 일합니다’ 같은 (사실이긴 하지만)모범 답안을 가져다 쓰는 것도 그다지 와닿진 않는다.
그래서 면접용으로 그럴듯한 단점을 만들어내기보다, 진짜 약점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솔직히 어떤 답변이 나올지 몰라서 무섭기까지 하다;; 중요한 건 단점 자체보다 그걸 인식한 뒤 어떤 루틴이나 행동을 통해 보완하고 있는지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제대로 답하려면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은 기획자가 되려면 뭘 해야 할까? 그건 바로… 야메군 님의 강의를 들으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절찬리 모집 중!)
말씀해 주신 내용 중 가장 먼저 해보고 싶은 건 일상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연습이다. 어떤 상황을 봤을 때, 보이는 현상만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생각한 이유가 맞다면 어떤 현상이 추가로 나타나야 할까?’처럼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충분히 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어 보였다.
기획자로서 더 길러야 할 능력도 있다. 바로 글쓰기와 센스.
10년째 매일 일기를 쓰면서 대부분 내 경험과 감정을 기록해 왔다. 앞으로는 범위를 조금 넓혀 사회 현상이나 책, 서비스처럼 외부의 무언가를 보고 무엇을 관찰했으며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남겨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블로그에서도 대부분 내 경험 위주로 글을 썼다. 이제 슬슬 인간 CRUD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조금 더 다양하게 넣어볼 때가 됐다.
그리고 센스라는 건, 상대가 질문했을 때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이 질문을 했는지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다. 면접에서도 질문의 의도가 모호하다면 혼자 짐작해서 엉뚱한 답을 하기보다 “제가 이해한 방향이 이런 쪽이 맞을까요?”라고 먼저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이건 실무에서도 종종 해오던 방식이었다. 고쳐야 할 것만 잔뜩 나오던 와중에 하나쯤은 이미 하고 있는 게 있어서 조금 안심했다 ㅎㅎ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커피챗을 진행했다. 진지한 내용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가볍게 풀어서 말씀해 주신 덕분에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커피챗 한 번으로 막힌 속이 뻥 뚫리고 갑자기 모든 고민이 해결! 이런 건 아니다. 대신 내가 원했던 것은 확실히 얻었다.
‘선배 기획자가 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부터 궁금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같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여줘도 전혀 다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이번에 피드백받은 내용 중 상당수는 사실 은연중에 문제라고 느끼고 있던 것들이다. 알고 있으면서 제대로 손대지 못했던 부분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확인한 셈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의 나였다면 보완해야 할 점을 이렇게 한꺼번에 들었을 때 창피해하거나, 괜히 자신감이 떨어져서 며칠 동안 우울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데 쓸 시간이 조금 아깝다. 오히려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써주신 만큼, 들은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말고 얼른 고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25년 차 시니어 기획자에게 이력서부터 면접까지 한 시간 넘게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흔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도움을 받을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나도 계속 역량을 갈고닦고 경험을 쌓아서, 언젠가 지금의 나와 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후배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을 당사자에게 그대로 되갚아줄 수는 없더라도, 나중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줄 수는 있으니 말이다.
아직 직장이 없는 내게 음료까지 사주신 야메군 님…☕️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다음에는 꼭 내가 먼저 사드리고 싶다. 커피챗 정말 최고야!